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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안보와 백신주권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무

[의학신문·일간보사] 공포와 단절의 행렬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예상은 턱없고, 일상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첫 사망한 지 100일, 국내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세계 192개국에서 30만명이 넘는 확진자, 1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상황판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2009년 160만명의 환자, 1만2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A(H1N1)를 팬더믹 질병이라 공식 명명한 것과 동일한 상황 인식이다.

세계는 닫히고, 글로벌 증시 폭락 등 경제 먹구름까지 더해져 ‘블루 데이’의 연속이다. EU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입국 불허, 나라 전체 이동금지령 선포와 80세 이상 환자에 대한 사실상의 치료포기(이탈리아), 사망자 220만명 예상에 10인 이상 모임 금지 등 긴급 가이드라인 발표(미국), 국민들의 해외 출국 전면 금지(호주) 등이 줄잇고 있다. 우리나라도 초비상이다. 모든 외국 입국자들에 대한 모바일 자기진단 앱 설치와 14일간 증상여부 제출을 비롯한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초중고 개학은 또다시 연기되고, 대학 강의는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면대면 경제시장은 침체와 실종의 대공황에 직면하는 등 평범하지만 당연했던 ‘우리의 일상’은 어느새 사라졌다. 물론 신속하고 끈질긴 밀접접촉자 추적과 격리조치, 헌신적인 보건의료진의 사투와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협조 덕분에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세는 감소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요양병원 등을 중심으로 집단감염 사례가 이어지는 등 통제가 계속 성공적으로 이뤄질지는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제약바이오산업계는 국가적 위기 국면을 맞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분투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 충남북과 전북 등에 산개한 경증 확진자 수용 시설인 15개 생활치료센터와 대구시 등에 각종 의약품과 방역 마스크, 손 세정제와 면역강화 드링크 등 30억원대의 물품과 성금을 지원했다. 많은 제약기업들이 전국에 흩어져있는 생활치료센터에 물품을 전달하고, 또 협회가 회원사들로부터 별도로 취합한 물품들을 현장에 전해줄 수 있도록 수송차량과 인력을 지원한 동아제약 등 자원봉사의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의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산업계는 잘 알고 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미국에선 공공 연구소와 민간 기업이 공동 개발한 실험용 백신의 임상시험이 시작됐고, 중국에서도 동물 실험이 시작됐다고 한다. 다만 백신 개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실제 사용되기까지는 최소 1년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진행중인 기업들과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가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GC녹십자·SK바이오사이언스·부광약품 등 10여개 기업에서 정부와의 공조하에 신속하게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크지만 그 속성과 그간의 사례에 비춰볼 때 단기간내 개발은 쉽지 않다. 20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3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백신은 아직 개발되지도 못했다. 당시에도 많은 기관과 기업들이 개발에 나섰지만 바이러스가 소멸되면서 대부분의 연구가 실험실에서 끝났다. 질병의 유행이 끝난뒤에야 백신이 개발되기도 한다. 1970년대 중반 처음으로 발병, 치사율이 90%를 넘은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제약 선진국들의 관심 뒷전으로 밀려나 백신 개발에 42년이 걸렸다.

이처럼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허가와 제조방법이 까다롭고, 부작용 허용범위도 매우 낮는 등 다른 의약품과 비교할 때 높은 난이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특히 백신의 개발 생산 운송 보관 등 모든 프로세스에 걸쳐 규제가 심한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개별 제약바이오기업의 선의와 개발노력이 신속하게 꽃피워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둘러싼 시간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여부는 예산과 정책 등 특단의 정부 지원여부가 결정적이라고 본다.

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인류의 세기말적 자화상, 세계 각국의 단절과 고립주의적 대처는 보건안보의 중차대함을 일깨워준다.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을 스스로 개발하지 못하고 사후치료 등 대처할 역량도 없는 국가는 외교와 무역, 감염병 비상사태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도 없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온전히 지켜줄 수도 없다. 2009년 신종플루 당시 GC녹십자의 예방백신 개발과 공급, 비상사태에 걸맞는 정부의 신속한 인허가 행정과 지원에 따른 백신 접종이 우리 국민의 건강권과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성공의 경험은 다시한번 백신주권의 소중함을 웅변하고 있다.

휘몰아치는 코로나19의 광풍도 언젠가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간절했던 ‘일상과의 재회’도 진정한 봄날처럼 우리에게 오겠지만, 더불어 ‘바이러스와의 일상’은 그 시차를 좁히며 빈번하게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5년내 또 다른 변종의 바이러스가 침공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제라도 제2, 제3의 코로나19 공습에 대비해 우리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토종기업의 치료제와 백신이 막대한 국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특단의 지원 생태계를 신속하게 구축해야 한다.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위한 신속 심사 등에 필요한 예산 지원, 행정절차 간소화와 각종 규제 해소, 폐기 백신 발생시 처리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방안 마련 등이 뒤따라야 한다. 미증유의 세계적 공황, 전례없는 국가적 위기를 치유하고 낫게 할 ‘약’은 기존의 관행과 절차, 행정편의와 일차원적인 산법을 뛰어넘지 않는 한 결코 탄생할 수가 없다. 단절과 고립을 넘어 연대와 공생의 보건안보 환경을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민·관 협력의 획기적인 오픈 이노베이션 실행과 백신주권 확립을 간절히 바란다.

의학신문  medicalnews@bo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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